이길자선배님 이야기 (의학 66졸)… 신앙 그리고 열정의 사람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왔을 뿐이었다. 유학을 와서 의학 중 산부인과를 택해서 공부했다.
교회가 없는 그 시대에 개척교회의 중심이 되어서 의사인 남편과 심방하며, 교인들의 육적인 건강도 함께 돌보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기쁨과 사명감을 갖고 돌보았다.형편이 어려워 약이 없는 자들에게는 무료로 약을 주고 치료해 주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병자들에게 긴급히 치료받을 기회를 주게도 되었다. 새로 정착하는 이민자들을 위한 봉사들을 무수히 하셨다. 정착, 취업, 입학, 법률, 의료, 통역,결혼,장례등…. 로드아일랜드에서 첫 여성 한인회장을 역임하시면서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발이 닳도록 많은 일을 하셨다.
의료보험이 없는 어려운 교민들, 유학생 가족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선배님 부부는 소망이 되셨다. 특히 산부인과 수술,임신 전후의 치료, 분만, 상담치료,응급 수술 등 끊임없는 섬김에의 부르심이었다. 의료 섬김 뿐 아니라 한인들을 위한 장학사업, 강연회, 문화사업을 유치하여 한인사회의 발전과 화합에 노력하셨다.
다 열거하기에도 숨이 차다… 뒤돌아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 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신다… 선배님께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신다. 잠시 방문하셨던 시부모님께서 미국에 체류하시기로 결정하신 후, 돌아가실 때 까지 함께 사셨단다.
자그마한 체구에 야무진 빈틈없으신 거동, 거칠어지신 손을 잡아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전문의사요, 사회운동가요, 교회의 장로로 리더의 자리에서 많은 일을 하신 선배님께서 어떻게 부모님을 그렇게 잘 섬기셔서 칭찬받는 며느리가 될 수 있었을 까? 노래, 춤까지 팔방미인이신 그 분은 실로 큰 달란트를 받으셨다.
이제 삶의 뒤안길에서 좀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사시는 요즈음 고백하신다. “참 힘들었어. 어떻게 다 해 냈는지 모르겠어… “ 겸손히 밝은 미소를 지으신다. 효성과 지성 그리고 영성까지 겸비하신 우리 선배님,곁에 계심이 참 감사합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일을 정성껏 살아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