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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코너) 내가 경험한 육이오 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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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영문과 64졸업

1950년 여름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 다리가 폭탕으로 무너졌을 때였다.

우리집 식구 어머니, 언니, 나, 남동생 셋 그리고 두 삼촌과 같이 먼거리 조부모님이 사시는 전라북도 줄포로 가기를 결정했지요. 아버님이 그 당시 미국에 계셨기 때문에 얼른 피난해야 했었습니다. 그해 4월에 한국 방직협회에서 아버님을 Trainee로미국으로 보내셔서, 우선 먼저 가셔서 정참하시고 나서 우리 식구들은 미국으로 데려가기로 했는데, 두 달 만에 육이오사변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제일 맏아들로, 남동생 3, 여동생 3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유교와 불교를 믿으셨습니다. 교육열이 강하신 분이어서 아들 넷을 다 교육시키시려고 아래 동생 셋을 서울로 다 보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명륜동 집에서 어머님이 대들 다섯 (언니, 나 그리고 남동생3)과 삼촌 셋 모두 열식구가 한 집에서 식모 하나두고 살았습니다.

그 때 첫째 삼촌은 서울 부속중학교 선생님이고, 막내삼촌은 대학교 학생이었는데 둘다 납치되었고, 둘째 삼촌은 서울의과대학교 학생. 그 삼촌이 가는동안 먹을 쌀, 냄비, 옷 등 그리고 막냇동생을 rickshaw에 싣고 밀면서 줄포로 먼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 때 33세, 남편없이 어린 아이들 다섯(12세, 9세, 7세, 5세, 3세)데리고 삼촌, 외삼촌 모두 8명의 여행. 외삼촌은 Avid cyclist여서 동생하나, 나 둘을 앞에 태우고 10일동안 가는 동안 많은 폭격과 썩는 시체를 지나가면서, 중간마다 인민군에게 검문 당하니, 함께 다같이 가지 않고 둘로 나눠서 미리 지정한 데서 만나 저녁을 같이 했습니다.

밤에는 빈 집이나 어떤 때는 폭격이 심해서 다리 밑에 숨어 있었고, 어떤 때는 저녁을 만들고 있을 때 폭격이 시작하여서 불을 끄고 밥이 반정도 된 거의 생쌀로 배를 채운 적도 있었습니다. 두 삼촌들과 우리 가족들은 피차간에 서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삼촌들 덕에 무사히 줄포까지 왔고, 삼촌들은 이북으로 납치되지 않았으니까요. 어린애들 때문이었지요, 인민군한테 우리들을 할아버지 집에 데려다 주고 나서 그들에게 join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납치당한 막내삼촌이 형한테 같이 도망가자고 했는데, 첫째 삼촌은 두려워서 그냥 그대로 남아있고, 막내삼촌만 혼자서 할아버지 댁으로 간신히 왔습니다. 삼촌 둘 (둘째, 막내)은 얼마동안 할아버지 집 대청 밑에 땅을 파고 구멍을 만들어 외인이 오면 그것으로 들어가 숨어서 지내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동네사람한테 들켰는데 인민군한테 보고를 안 했지요.

그 이유가 할아버지가 동네사람들한테 인심을 잃지않고 존경을 받으신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부모님 덕으로 우리 가족들이 다 무사히 전쟁을 보냈는데 단 한 가지는 지금까지 첫째 삼촌이 행방불명입니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농사를 해서 좋은 crops 아끼고 식구들한테 주지 않고 저장해서 )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내 손에 과일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먹으면 그만 없어지지만 남한테 주면 그 선의 행위는 항상 흔적을 남김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오랫동안 간직하시다가 썩어서 pig feed가 된 적도 있구요. 우리는 집 안채에서 살고 사랑채는 그 당시 설탕회사에서 책임자로 있는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내가 그 집 식모도 흰쌀밥을 먹는 것을 보고 그렇게 부러워한 적도 있었지요. 우리는 매일 꽁보리밥만 먹는데… 그 당시 보리가 쌀보다 더 영양이 있는 것을 몰랐으니까요. 고생을 했기 때문에 안 한 사람보다 지금 더 감사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 속담에 “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하는 말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P.S. 저는 1964년도에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 Master’s degree in library science 한 후 4년 college library에서 일하는 중 필라델피아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요. 아들 하나를 낳고 후에 real estate broker로 30년 일하다가 3년 전에 retire했습니다. 남편은 서울 공대 전기과 졸업하고 Raytheon Company 에서 Chief Scientist 로 일한 다음 10년 전에 reitire 했음. 그 후 ‘meals on wheels’에서 자원봉사 하다가 작년에 그 만 두었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항상 살아가느라고 세월이 가는 걸 못 느꼈습니다. 후회도 됩니다. 건강히 모두 다 잘 지내시기 바라면서!

“The clock is running. Make the most of today. Time waits for no man.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it is called the present. “

– Alice Morse Earle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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