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멀리서….
주일 아침 9 시반. 교회 현관문을 들어가면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나는 2층 성가대실로 가서 찬양 연습을 하고, 남편은 소그룹 교재 ‘기쁨의 언덕으로’ 와 lap top computer 를 가지고 교실로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11 시 예배가 시작되면 남편은 예배당 오른쪽 셋째 줄(31 년째 같은 자리)에, 나는 단상에 자리한 성가대 좌석 맨 앞줄 끝자리(남편과 대각선으로 바라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지만 가끔은 무심히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는 이 시간이 좋다. 이제 결혼한지 44 년, 미국에 와서 41 년이 지났다.
얼굴의 주름은 세월의 흔적이 완연하고 시력도 침침한 노안이 되었지만 마치 처음 마주 보는 것처럼… 쑥스러워하며 조금 수줍은 미소도 지으면서, 멀리서 바라보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지난 5 월 한국에 갔을 때 친정집에 가서 오래된 앨범들을 찾아 보았다. 나보다 훨씬 젊으셨던 모습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 고모들, 삼촌들의 결혼사진들. 할아버지를 모시고‘장수무대’에 출연까지 했던 화목한 대가족 사진. 여성잡지 비타민 광고에 실렸던 우리 가족 사진들. 휴대 전화기로 다시 사진 찍어 보관하였다. 빨리 흘러가 버린 세월 속에, 이제 96 세가 되신 어머니의 작아지신 모습이 애처럽고 슬프다.
5월 말에는 고등학교 개교기념일에 모교에서 만난 어렸을 적부터 친한 (지금은 California 에 살고 있는) 친구와 함께, 뛰놀며 함께 자란 고향 동네 북아현동을 찾아 보았다. 50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친구들이 살던 낡은 집들이 있고, 내가 살던 집은 현대식 아파트 스타일로 바뀌어 낯설은 주택가로 바뀌었다. 옛 동네를 서성이면서, 같이 기억하는 추억들과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걸었다.
공해와 오염으로 이제는 마실 수 없게 된‘복주물 약수터’는 노인정이 되었고, 우리보다 조금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노인들이 평상에 앉아서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옛날 나의 아버지께서 이른 아침 약수를 드시고 체조도 하시던 곳.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 숨차게 오르내리며 대학 시절 학교에 걸어 다녔던 언덕길. 그저 한참 바라보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내가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고향 동네를 이토록 그리워하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만리 타국에 살면서 꿈속에서 길을 헤매며 아련히 그려 보던 곳… 멀리서 바라 보기에 더욱 그리운가 보다. 나이가 드니 자주 만나 볼 수 없는 고향 친구들과 가족들. 옛날처럼 가까이서 살아 보고싶다.영어가 아닌 유창한 모국어로 소소한 일상과 인정을 나누며 김치와 된장 냄새에 신경 쓰지 않고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맛있는 냉면과 빙수도 실컷 즐기면서 재래시장도 한바퀴씩 돌아 보고 싶다.
이제는 자식들 다 키우고 옛날의 자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동창들과 가끔씩 여행도 하고 수다도 실컷하면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한국을 방문하여 한 달 정도 머물다 보면, 내 작은 텃밭, 푸르고 깨끗한 산과 바다 그리고 아들 딸이 있는 보스턴이 아득한 그림으로 떠 오른다. 가까이 있을 때 그 소중함을 잊곤했던 내 주위의 모습들. 아련하게 멀리 뵈면서 다시 애틋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